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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12. 31 강진 여행 (다산정약용 유배지, 백련사, 설성식당,)국내여행 2026. 1. 15. 19:31
유홍준 선생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너무도 유명한 책이고
7, 80년대 생들에게 필독서로 꼽히는 바
돌아다니다 보면 어디서든 볼 수 있는 책이었지만
정작 읽어 본 사람들은 많지 않았던 책이다.
하지만 마치 수학의 정석 책에 "집합" 처럼
(요즘은 1장이 집합이 아니라지만)
7, 80년대 생들은 적어도 첫 챕터만은 읽어 봤거나
읽어 보진 않았어도 들어는 봤을 것이다.
아니, 저 책의 제목 조차 모르는 90년대 이후 생들조차도
이 말은 들어 봤을 것이다.
'남도 답사 1번지'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책의 첫 챕터에서 나오는 말인데
저 말이 워낙 유명해서 이제는 아예 고유어 처럼 돼 버렸다.
그리고 그 남도 답사 1번지가 지칭하는 곳이 바로
강진과 해남을 가리킨다.
유홍준 선생 덕에 너무도 유명해진 지역이지만
한반도 남쪽 끝에 자리했기에 찾아본 사람은 많지 않은 곳
남도 답사 1번지 강진을 가려 한다.
특별한 목적지 없이 그저 네비에 강진을 찍고
무작정 달린다.
새벽부터 부산을 떤 탓인지
막힘 없이 달릴 수 있었고,
서울에서 네시간 남짓 걸려 도착할 수 있었다.
네시간여 달리는 차 속에서
밥을 먼저 먹을까
아니면 어디를 들를까를 계속 고민하다가
역시 강진 하면 절대 빼 놓을 수 없는
다산 선생의 유배지 - 다산초당으로 향하기로 한다.
조선 제일의 천재로 손꼽히는 다산 선생은
수많은 업적을 남겼음에도 말년에 유배되는
불운을 맞는다.
하지만, 세상 만사는 받아들이기 마련.
정약용 선생은 그 불운을 불운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보통 사람이라면 좌절과 시름에 빠질 그 순간을
그는 후학을 양성하고, 수많은 연구를 완성할 기회로 여겼다.
정약용 선생은 유배기간 18년 동안
무려 500권이 넘는 저술을 해 낸다.
그런 그가 살았던 곳이기에
강진은 그 자체로 남도답사 1번지가 될 수 있었을 것이다.
유배지라 그런가?
무언가 멋진 경치 따위는 기대하기 힘들고
웬지 쓸쓸한 기운이 느껴진다.
지금이야 차로 꽤 올라와서 1km 남짓만 걸으면 당도하지만
(근데 이 마저도 꽤나 버겁다)
이전에는 산 밑에서 꾸역 꾸역 올라왔어야 할 곳에 자리잡은
다산초당은 나무들에 둘러쌓여 볕도 별로 들지 않는다.

다산초당 오르는길. 꽤나 버겁다. 우리는 차로 꽤 올라온 걸 생각하면, 옛날에는 정말 말 그대로의 유배지였을 것이다. 분명 외가인 해남 윤씨의 도움으로 비교적 넉넉한 유배생활을 보냈다고 들었는데
실상은 그렇지 않았을 것도 같다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쉽지 않았을 유배생활 조차
정약용 선생은 누울 곳이 있으면 충분하다는 마음가짐으로 받아들였던 게 아닐까?
그의 삶을 돌이켜 보면 나만의 추정이지만 제법 설득력을 얻는다.
원래 다산초당은 초가집이었는데
1958년도에 복원하면서 기와집 비슷하게 만들었다고 한다.
오히려 초가집으로 만들었으면 다산의 마음을 더 깊이 느낄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긴 하지만,
관리를 생각하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을 것이다.

다산초당을 뒤로하고
추사 김정희 선생이 쓴 현판과 다산이 쓴 현판이 있는 건물을 둘러 본 후
생전 정약용 선생의 절친한 벗 혜장스님이 계셨던
백련사로 향하는 오솔길을 걷는다.

추사 김정희 선생이 남긴 현판 백련사와 다산초당은 걸어서 30분 남짓인데
혜장과 다산은 서로를 찾아 수도 없이 발을 오갔다고 한다.
그들의 마음은 친우를 만나러 가는 설레임이었겠지?
그렇게 만나 끊임없이 교류하고 토로하는 것이
다산의 낙이었을 것이다.

다산초당에서 백련사 가는 길. 왼쪽의 산죽나무가 인상 깊다. 꽤 힘든 길인데, 다산 선생은 친구를 만나는 설레임으로 즐겁게 걸었을 것이다. 마음같아서는 백련사 까지 완전히 걸어서 가고 싶지만
차도 있고 하여, 중간을 좀 넘은 지점에서 다시 돌아오고
대신, 차를 끌고 백련사로 향한다.
여담이지만, 개인적으로 국내 여행을 떠나면
근처의 절을 꼭 가보라고 추천해 주고 싶다.
지금도 그 지위가 결코 낮지만은 않지만
예전에 절의 위상은 상상을 초월했을 것이다.
그런 절이기에, 절이 위치한 지역은 명당 중의 명당이고
이 명당이라는 게 결국, 사람이 살기 좋은 곳,
지금으로 치면 볕 잘들면서도 한강뷰를 낀 마냥
멋진 뷰를 품고 있는 곳이다.
절 자체도 볼 거리가 많지만
절에서 바라보는 풍광은 결코 실망시키는 일이 없다.
백련사 역시 예상대로다.
백련사에서 바라보는 남해 바다를 낀 풍광은
이 여행의 백미고, 그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경험이다.

백련사에서 바라본 풍광. 역시 절에서 바라보는 풍경은 실망시키지 않는다. 그런데, 그래서 다산 초당이 더욱 쓸쓸하게 느껴진다.
어쩌면 그랬기에 다산 선생께서 백련사를 더욱 많이 찾았으려나?
그렇다고 생각하는 건 다산과 혜장스님의 관계에 대한 누가 되는 생각이려나?
뭐 여튼 좋다. 쓸쓸함은 다산선생과 마주하는 연결 고리고
그저 지금, 이 곳은 너무도 아름다운 절일 뿐이다.
백련사 이곳 저곳을 구경하다 보니
벌써 점심 시간이 지나간다.
남도 하면 역시 남도 정식
굳이 한정식 집이 아니라도 한 상차려 나오는 곳이 많은데
병영쪽에 가면 불고기 백반집이 유명하여 아예 거리가 형성되었다고 한다.
가장 유명한 곳은 설성식당인데,
거긴 웨이팅이 많을 것 같아 포기하기로 하고 일단 병영 쪽으로 가 보기로 한다.
하지만 웬걸.
점심시간이 조금 지난 탓인지 웨이팅이 없었고
유명한 건 이유가 있겠지 하는 마음으로 설성식당을 찾는다.
설성식당은, 방에 상이 없고, 앉아 있으면 두사람이 상을 들고 오는 거로 유명하다.
차가운 날씨에 오들대다가 따뜻한 온돌방에 들어오니 세상 다 가진 느낌이다.
그냥 여기서 들어누워 자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한다.
그러나 그러한 생각이 깊어질 때쯤, 한 상 가득 푸짐한 밥상이 들어온다.

설성식당 밥상 반찬 가지수가 꽤 되는데, 음식들 하나 하나가 먹음직 하다.
여행지의 유명식당에 대한 기대치가 높지 않은데,
이곳은 추천해 줄만한 곳이 맞다.
뭐 근처의 다른 식당도 비슷하지 않을까 싶긴 하지만...
기분 좋은 식사를 마친 후
병영의 유명한 소주를 한 병 사고
하멜기념관으로 향한다.
어렸을 때 하멜표류기라는 말은 배웠는데,
정작 표류기가 뭔 지 몰랐던 기억이 난다.
그저 암것도 모르고 무작정 하멜표류기로 외우던 주입식 교육,
그러한 생각을 하니, 왜 그랬을까 싶은게, 살짝 웃음이 난다.
하멜표류기가 유명했던 탓에
사실, 하멜은 우리나라에서 충분히 대접받고 살았던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실상은 전혀 달랐다고 한다.
집에 돌아가고 싶어도 돌아가지 못하게 억류한 것이고
도지사에 따라 달라지긴 했지만, 거의 거지처럼 살아야 했단다.
사실을 알고 보니 하멜한테 미안한 마음이 들고
살짝 부끄럽기 까지 하다.
뭐 그 또한 그 시대의 사는 방식이었겠지?
마음 같아선 더 많은 곳을 둘러보고 싶지만
우리는 짧은 여행으로 온 것.
이쯤에서 마무리하고 올라오며 카페 한 곳을 들렀다 가기로 한다.
그저 가는 길에 있어서 아무 생각없이 찾은 곳인데
이 카페 참으로 좋다.
월출산과 월남저수지를 끼고 있는 한옥카페.
가격도 괜찮고 풍경은 두말할 나위 없다.
날씨가 좋으면 테라스에서 차 한 잔 하면 더 없이 좋으련만
워낙 추우니 안에서 통창을 통해 뷰를 만끽하는 것으로 대신하고
기분 좋게 오늘의 여행을 마무리 한다.

카페(사문로98)에서 바라본 뷰 비용 정리
- 다산초당 / 백련사 : 무료
- 하멜기념관 : 무료
- 설성식당 : 13천원 / 인
- 카페 "사문로98" : 5~6천원 / 인
- 병영 소주 : 42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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